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맥심

설리숲 2018. 3. 8. 22:26


 여자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귀대시간이 가까워졌다.

 짧은 시간이 아쉽지만 군바리가 별수 있나.


 “자기 뭐 필요한 거 없어?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 뭐라도 하나 사주고 싶어서.”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괜찮다고 하려다가 강병장이 생각났다.

 외박 나오는 김일병을 붙들고 신신당부 부탁을 했었다. 귀대할 때 꼭 맥심을 사다 달라고.

 커피야 PX에서도 팔고 내무반에도 흔하게 굴러다니는 것을 굳이 외박 나가는 자신에게

다짐 받듯 할 것까지야 없었다. 그렇지만 워낙 꼴통 취급을 받는 강병장이니 그런 가벼운 똘끼야

얼마든지 봐준다. 여자친구가 면회를 왔겠다 기분 좋으니 그까짓 맥심 한 박스 큰 걸로 하나

쏘리라 요량하고 있었다.


 “그럼 맥심 큰 걸로 하나 사 주라


 그리해서 여자친구가 사준 맥심 커피 한 박스 들고 콧노래 부르며 귀대를 한 거였는데.

 

 이런 우라질!

 좋아해야 할 강병장이 그러기는커녕 냅다 욕을 퍼붓는 거였다. 평소 꼴통짓을 하는

강병장이긴 해도 그렇게도 욕지거리를 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이어서 멘털이 허공에

붕 뜨고 말았다.

 

 “개또라이 같은 시키.... 대가리가 안 돌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새꺄, 커피 못 먹고

뒤진 귀신이 씌웠니? 맥심을 사 오랜다고 진짜 맥심을 사오냐 씨발아! "

 

 눈치 없는 김일병은 잠시 후 한병장의 귀띔을 듣고서야 맥심이 그 맥심이라는 걸

 알았다.

 맥심 잡지라는 거를.



   




 내 소싯적에 <선데이서울>과 <주간경향>이 혈기방장한 수놈들의 심신을 지배했다.

내 소싯적이라는 건 중3이나 고1 정도를 말하지만 나는 그 까짓 주간지 따위는

싱거워서 영 관심이 없었다. 워낙 조숙했던 나는 예닐곱 살 때 벌써 동네 아가씨들

엉덩이 쫓아다니며 내 알라도~ 내 알라도~” 했으니까.

 어쨌든 또래 놈들은 나름대로 주관들은 있어서 주간경향보다는 선데이서울이

 더 화끈하다며 선호했었다.

 

 요즘은 월간 <MAXIM>이 그 자리를 물려받은 모양이지만 글쎄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에서 언제든 쉽게 향유할 수 있는, 성에 대한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요즘에

과거 주간지만큼은 아닐 성 싶다. 그래도 꾸준히 맥심 잡지가 발간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수익은 나는 것 같은데 난 본 적이 없어서 얼마큼 야한지는 모르겠다.

뭐 야해 봐야 기껏 여자애들 비키니 입은 정도겠지 그보다 심한 노출은 당연히 아닐 테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김일병의 여자친구가 또 면회를 왔고.

 그녀는 이번에도 맥심 한 박스를 선물해 주었는데. 이런 센스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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