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제인 에어

설리숲 2016. 11. 21. 22:18

 

 아주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그 분량이 너무 많아 영 손이 가지 않던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드디어 읽었다.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다.

 부당한 대우에 암팡지게 반항하는 여주인공 제인의 당찬 캐릭터가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여 숨가쁘게 책장을 넘겼다. 어허, 이것봐라! 고품격 페미니즘 소설인데.

 아, 이 소설이 명작으로 남은 이유가 있었구나. 하면서 읽어 가다가 처음의 기대가 서서히 퇴색해지고 말았다.

 결국은 사랑 이야기였군. 여류작가의 한계를 보았다. 시작할 때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들은 이 소설에서 별 의미가 없다. 초반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나머지는 여주인공의 연애와 사랑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샬롯의 동생인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이 역시 그렇다. 

 

 역시 여자작가구나 절감하는 부분은 어느 집이나 방을 묘사할 때 지나치게 세밀하게 설명한다는것이다. 이 부분은 작품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데도 아주 길게 묘사를 하고 있다. 솔직히 이 장면이 나올 때면 읽지 않고 건너뛰곤 했다.  두 남자에 대한 인물묘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은 여성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묘사는 있되 두 남자에 비하면 반의 반도 안 된다. 그만큼 제인 에어와 샬롯은 남자와 사랑 이야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셈이다.

 

 나는 초반 로드학교에서 만난 헬렌 번스란 인물에 매력을 느꼈다. 그 역시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처지지만 제인처럼 반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이해하려 한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제어하며 묵묵히 견뎌 나간다. 같은 페미니스트지만 제인과 헬렌은 이런 차이가 있다. 내 성격과 비슷한 헬렌이어서 그녀의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결핵에 걸려 사망하고 만다.

 그래서 나의 <제인 에어> 읽기는 초중반 이후로는 영 시들해져 버렸다.

 로체스터가 점쟁이로 변장한 장면은 억지 설정이었고 한국 트렌디 드라마를 연상하게 했다. 또 제인이 꿈을 꿈으로써 앞날을 예고하곤 하는데 드라마작가 임성한이 떠올라 실소했다. 임성한의 드라마에는 반드시 무당이나 점쟁이가 등장해 드라마의 줄거리를 예고해주곤 한다.

 

 어쨌든 절절한 사랑 이야기지만 제인 에어의 페미니즘은 내내 살아 있어 그 점은 읽을 가치가 있긴 하다.

 

 브론테 일가에게도 케네디 일가 못지 않은 저주가 있는 듯하다.

 아버지 패트릭과 어머니 마리아에게 6남매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39세에 사망했다.

 첫째 마리아와 둘째 엘리자베스는 몸이 병약해 열 살 전후에 요절했다. 가난한 성직자인 아버지는 딸들을 자선학교에 보냈는데 엄격하기만 하고 자애롭지 못한 학교에서 위생상태는 불량했고 아이들을 혹독하게 다뤘다. 요즘 사회문제가 된 아동학대의 전형이었다. 영양실조와 결국은 결핵으로 두 언니가 요절했다. 소설서는 로드학교가 그것이다. 샬럿은 소설로 그 학교를 고발하려 한 듯하고 소설에서는 헬렌 번스가 로드학교에서 결핵에 걸려 요절한다.

 다섯째 에밀리는 30세, 막내 앤은 29세에 사망했다. 아버지 패트릭은 자식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 언니들이 죽고 남은 형제들은 충격과 함께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평생을 상처 속에 살다 모두 일찍 죽었다.

 유일한 아들 넷째 브란웰은 29세에 사망했다. 아편과 알콜중독으로 허항한 세월을 보내다 죽었는데 소설에서 존 리드의 모델이 된 듯하다. 샬럿 브론테는 부목사와 결혼하였으나 이듬해 39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브론테가 사람들 중 정작 아버지만 비교적 오래 70세까지 살았다.  



  

  미술학도 브란웰이 그린 세 누이의 초상화.

 샬럿, 에밀리, 앤은 문학가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원래 이 그림에는 브란웰 자신도 있었지만 세 누이의 명성에 비해 초라한 자신에 대해 열패감을 느껴 후에 본인의 모습을 지웠다고 한다.



 <제인 에어>에 이어서 요즘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을 읽고 있다.



영화 <제인 에어>중 Awa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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