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가시버시가 들판에 나가 일을 하고 저녁에는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똑같이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남편은 아이고 힘들다 벌렁 드러누우면 그만인데 아내는 그때부터 집안일을 시작한다. 어린 시각으로도 참 너무 불공평하고 부조리하다고 느꼈었다. 어쩌면 내가 남자이면서도 페미니즘의 기혈을 지니고 있는 게 이런 까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러니 어느 여자가 농사꾼을 좋아할까. 물론 시골 산다고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니요 또한 지금 시대야 그렇지 않을 테지만 도시 그것도 아파트 생활이란 게 그 얼마나 편하고 쾌적하냔 말이지. 현실을 보지 않고 시골을 거부하는 여자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시골 아니라도 쾌적한 도시에서도 워킹맘의 고충도 이만 못하지 않다.
퇴근해서 돌아와 샤워하고 나면 모르긴 모라도 7시 반이나 8시는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도 카같이 곧장 집으로 온다면 말이다. 밥 짓고 먹고 나면 그 시간이 일러 무엇하리. 갖가지 밀린 집안일들.
속 좋게 말하자면 여자는 바깥일 하지 말았으면 좋겠지만서두 세파에 떠밀리는 우리 삶이 또 어디 그런가.
백마 탄 기사나 갑부집 아들을 만나지 않는 한 여자의 생활은 도시나 시골이나 역시 다 고되고 애처롭다. 세상이 좋아 여자들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되니까 천방지축 나댄다고 비하하는 말들은 하지 말자. 당신들이 고된 생의 가운데서도 먹고 마시며 망중한을 즐길 때도 그네들은 노심초사 당신과 아이들 집안의 경제를 울가망하며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보통의 소녀들과 철없는 아가씨들이 말 탄 기사를 고대하며 만화 같은 미래를 꿈꾸는 거겠지.
예로부터 딸 시집 보내는 걸 여읜다고 한다. 여의다라는 말은 부모 등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영원한 이별의 뜻으로 쓴다. 딸 시집 보내는 것도 죽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으로 간주하고 여의었다고 하겠지. 이건 참말 심각하고 슬픈 일이다. 어째서 딸은 내 자식 내 식구가 아닌 걸까. 이보다 더한 말이 치운다라는 표현이다. 딸내미 하나 하나 남은 거 마주 치워 버렸지. 노인네들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처음부터 딸은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될 존재였으니 제자리로 치워 버렸다는 거구나. 동양의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한국의 여자에 대한 개념은 이처럼 기구하다.
흔한 여권신장론자들은 자기들의 학벌과 지위를 내세워 화려한 겉멋만 부리기만 하지 실지로 여성들의 애로를 감싸안고 있는가. 페미니스트라고 분류된 여성들의 행보를 보면 그들 상위층 사람들의 자기들만의 만족느끼기 이상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오한숙희 김신명숙 같은 두 자 성을 가지는 게 여권신장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힘 없고 가난한 여성들의 고통과 불합리한 생활 등을 진정 헤아려 보려 하는가.
서산 여행길에서 염소의 우연히 출산장면을 지켜보았다. 환희의 순간이다. 어미는 고통을 동반한 환희의 순간이겠다. 사람과 달리 나오자 마자 강종강종 뛰면서 어미 젖에 매달리는 새끼들의 신기한 풍경. 그런 새끼들을 핥아 주는 어미의 자애스런 행태. 시뻘건 태반을 달고 선 아름다운 모습이다.
카메라를 찍으면서 어느 저명한 여성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도 사람이요 고상한 여자인데 출산할 때의 그것은 짐승과 다름없다는 게 무척이나 싫고 불쾌하다는. 그걸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공감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사람이 짐승보다 나을 것 없고 오히려 더 못다는 생각도 한다. 섹스를 쾌락하는 종족은 사람 뿐이라. 다른 종족들은 오로지 생식을 위해서 섹스를 한다. 나는 사람이면서도 이것이 회의적일 때가 있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행태가 짐승과 같아서 불쾌하다는 그 여성은 아마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았을 것 같다. 프로필을 몰라 알 수 없다.
여자,
남자는 캐릭터가 단순하다. 좋은 남자 아니면 나쁘 남자. 여자는 참으로 다양하다. 여자작가가 쓰는 일일드라마을 보면 확실하게 표현된다. 남자 캐릭터들은 두루뭉실 다 비슷하다. 보통 교회오빠라고 대변되는 타이프의 점잖은 캐릭터들이다. 여자 인물들은 참으로 많은 성격들의 캐릭터들이 포진해 있다.
여자,
그 다양하고 복잡한 그 사람들에 대해선 이야기꺼리가 참으로 많다. 내 소설의 주인공도 거개가 여자인 것을 새삼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