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에 어떤 특별한 영성이 있어 신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무꾸리집에는 어김없이 대나무 간짓대를 세워 놓았다. 굿 따위를 할 때 신장대는 반드시 대나무가지를 쓴다. 대나무가 없는 강원도에서는 예부터 대신 솔가지를 신장대로 썼다. 무당이 신을 부르며 비난수를 주워 셍기면 신장대를 잡은 사람의 손이 가늘게 떨기 시작하면서 절정으로 치달을 때는 미친듯이 휘두르며 허공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특정한 사람이나 구석에 가서 흐느끼듯 음전하게 도사리기도 한다. 나는 처음 가늘게 떨기 시작할 때 가장 무서움을 느끼곤 했다. 아, 저기 귀신이 들어왔구나. 욱, 하고 토악질을 느끼며 까닭모를 공포가 엄습하는 것이다. 신장대에는 하얀 소지나 혹은 하얀 실타래를 감았다. 그것이 푸른 솔잎과 대비되어 묘하게도 요요한 느낌을 준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신 따위를 믿지 않는다. 어린 소견이면서도 그런 점에서는 한참 성숙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건만 무꾸리나 무당 판수 굿 등에 관계되는 것에 대해선 늘 알 수 없는 무섬을 가졌다. 동네 어느 집에서 굿을 하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 죄다 굿 구경을 갔고 그런 날 밤에는 나 혼자 집에 있곤 했는데 그 얼마나 무서운 밤이었는지. 무당이 불러 모은 귀신이 어두운 마당을 지나 방으로 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감.
때로는 우리 집에서도 그런 것을 할 때가 있었다. 나는 미신 따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장대가 떨리는 것도 죄다 거짓부렁으로 알았다. 신장대 잡은 사람이 미리 무당과 짜고 일부러 흔들어 대는 것이라 생각했다. 미리 짜지는 않았더라도 그 절정의 분위기에 휩쓸려 버리면 그 신명에 흔드는 것이라고. 신나는 음악으로 가득 찬 클럽에서 너도 나도 몸을 흔들어 대는 것처럼.
한번은 작은 형이 신장대를 잡았다. 작은 형이라면 거짓으로 신장대를 흔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못 흥미가 동했다. 이윽고 요사스런 비난수가 분위기를 돋우는 가운데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형이 잡은 솔가지 신장대를 지켜보았다. 아니 그런데!
형의 손이 떨기 시작했다. 나는 무서운 경외감과 더불어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질 않았다. 설마 형까지 거짓부렁을 할 줄이야. 일말의 배신감까지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정말 신의 세계가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나는 교인들의 하나님도 믿질 않는다. 철저한 무신론자다. 어릴 때도 그랬다. 형이 잡은 신장대가 덜덜 떠는 것을 보았던 그날 약간의 정신적인 혼란이 일었다. 어쩌면 신은 자신을 부정하는 나를 해코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그래서 얼른 그 곳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만약에 나더러 신장대를 잡으라고 한다면 나는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을 부정하고 신장대가 떨리는 것을 거짓부렁으로 믿고 있는 나를, 정말로 신의 영령이 깃들어 내 신장대가 떤다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말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애써 부정해 보지만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가끔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 <캔디맨>이라는 비디오영화를 본 적이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세 번 부르면 요사한 요괴가 나와 사람을 해치는 호러옇화였다. 그것 때문에 호기심이 일어 거울을 보며 실험을 해 보기도 했었다. 캔디맨! 캔디맨! 두 번까지만 부르고는 도저히 세 번을 부르지 못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지만 사람에게 최후의 알량한 믿음이란 게 있어서 그 눈곱만큼의 공포감이 도저히 마지막 캔디맨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정말로 마지막 캔디맨을 외치기엔 사람의 심리가 너무 나약함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내가 신장대를 잡지 않으려는 이유도 그와 똑같은 종류의 두려움 때문이리라.
부두나 항구에 가면 배에도 저처럼 대나무 간짓대를 꽂은 걸 많이 본다. 대나무에 어떤 영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늘 죽음과 가까이 있는 뱃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이랄까. 그저 평안과 안녕이 절박한 사람들의 일종의 부적 같은 것이리라.
나는 여태까지 무속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장대가 떠는 것은 참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게다가 날이 시퍼런 작두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은 어이된 일인지. 신이 존재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현실이... 멘탈이 붕괴되는 적도 더러 있긴 하지만 단지 그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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