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월, 찻집의 오후

설리숲 2012. 2. 17. 02:37

 

 서울 어느 하늘 밑

 겨울 오후의 양광을 받는 찻집 하나.

 성급한 인간들은 봄이라 애써 우겨 보려 하지만, 기실 저만치 그것의 온기가 와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겨울이고 거보란 듯이 다시 한파가 닥쳤다.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쩌겠는가.

 찻집 다담상에 홍매화가 있다. 조화인가 했으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생화다.

 이 추운 엄동에 어디서 매화를 구해다 꽂았을까.

 찻집 안에서 내다보는 풍경은 냉랭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노란 햇볕이 쏟아지는 따뜻한 봄날의 정경이다.

 

 

 

 

 

 

 일국의 국회의장이란 사람이 살포한 돈봉투의 부끄러움, 가장 깨끗함을 추구한다는 스포츠의 연이은 추악한 승부조작들, 먼 시리아에서는 존경하는 국민들의 가슴에 대포를 쏴대는 처참한 살육이 진행되고 있다.

 정신없이 휘둘러대는 세파에도 이렇게 찻집에 앉아 은은한 향을 마시고 있으면 그런 소용돌이 따위는 부질없어 그저 시시껄렁하기만 하다. 살아야 얼마나 산다고.

 

 

 자극적인 커피도 맛나지만 은은한 분위기와 향을 느끼는 이런 차도 참말 아름답고 고상하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정담과 진한 회포는.

 어서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이놈의 겨울은 너무 길고 춥고 싫다.

 

 

 

 

 

 

 안현정 작곡의 이 정가 <오래된 정원>을 듣고 있으면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인 연유인지 자꾸만 메마르는 것 같다. 정확하게는 염세적인 감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황량한 찻집 마당에 춥고 메마른 바람이 쓸고 지나간다. 이집 마당엔 키 작은 나무 하나 없다.

 

 

               탁계석 시 안현정 곡 : 오래된 정원



 


어느 돌담을 스쳐온 바람이런가
담장이 넝쿨 흔들던 바람아
세월 묵어 이끼 낀 석등 위에
깊은 산골 산새라도 쉬었다 가나
하얀 꽃 수연이 핀 오래된 정원에
달빛만이 저 홀로 걷는구나

 
어느 산자락을 스쳐온 바람이런가
앞마당 싸리문에 속삭이던 바람아
비록 옛 주인은 떠나갔어도
바람에 실려 반가운 소식이 올까나
하얀 꽃 수연이 핀 오래된 정원에
달빛만이 저 홀로 걷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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