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귀뚜라미가 죽어 나간다.
여름이 끝나면서 오두막집 안팎은 온통 귀뚜라미 천지다. 방에 기어다니는 놈들은 좀 싫다. 낭만도 하루 이틀이지 구석구석에서 튀어 나오고 간혹 반찬 그릇에도 들어가기도 하고. 바퀴벌레만큼은 아니라도 과히 반갑지 않다. 그냥 에프킬러 한번 뿌리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것도 생명인데 수만 겁의 인연에 의한 제 에미애비의 결합으로 잉태하여 살겠다고 여기저기 기고 뛰는 고귀한 인생들이다. 뭐 딱히 놈들이 내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가뜩이나 지저분한 방이 놈들이 여기저기 기어 다녀 더 불결해 보일뿐이지. 같이 부대끼며 살아 보자.
갑자기 날이 추워졌다. 이젠 철이 지났는지 기세 좋던 귀뚜라미들도 현저히 숫자가 줄어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한두 마리씩은 죽어 있곤 한다. 그 주검들을 대하면 가을 보다는 겨울이 가까이 온 것을 느낀다.
산골 물은 여름에도 차서 어쩌다 옷을 벗고 물을 끼얹을라치면 진저리를 친다. 어제부터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다. 아직까지는 맨손으로 버텼지만 이젠 도저히 설거지와 빨래를 할 수가 없다. 고무장갑을 쓴다. 짜장 찬 계절이다. 서서히 대지는 식을 것이고 다시 만물은 근원으로 돌아가겠다.
전에는 겨울을 젤 좋아했었는데 길고 혹독한 추위를 겪다 보니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공연히 불안하고 을씨년스럽다. 올 겨울은 또 우찌 넘기노. 나이가 들어가는 탓이리라. 돌나물 같은 맹렬한 열정이 고자누룩해짐을 절감한다.
어쨌든 우주 자연은 순환한다. 그것이 불변진리다. 내가 아무리 싫다고 역정 내고 발버둥쳐 봐야 한낱 미물의 치기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것에 맞게 어울려 순환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
가을 숲은 먹을 것이 풍부하다. 계절과 자연이 내게 주는 특혜다. 맘껏 누리자.
겨울은 더 있어야 하고
황금처럼 아름다운 가을이다.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