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동백을 보러 갔지만 동백꽃은 보지 못했네

설리숲 2022. 3. 16. 21:36

 

광양 옥룡사지에 동백숲이 있다고

그러면 당연 지금쯤 동백꽃이 덜퍽지게 피었을 게라고 거의 한나절을 걸려 당도했다.

 

 

 

 

과연 동백림은 거창한데 꽃은 없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곳 동백나무가 약 1만여 그루로 국내 최다라고 한다.

근데 꽃은 없다.

아직 덜 핀 것도 아니요, 이미 진 것도 아니다.

이곳 동백나무들은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나무가 아닌 것이다.

부산 동백섬도 나무는 빽빽하게 우거져도 화려항 꽃잔치는 없다.

 

 

 

 

나처럼 이름만 듣고 온 관광객들이 실망스러워하는 대화들을 나누며 아쉽게 떠나간다.

가물에 콩나듯 두어 송이씩 달린 동백꽃.

꽃이 구쁜 관광객들이 그나마 폰을 내밀어 찍는 포토존이다.

 

 

 

 

이날 이곳에서 가장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입구의 이 여인이다.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

 

 

 

 

나도 적잖이 실망을 했다.

한나절을 소비해 멀리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 아까워 다산초당을 가기로 한다.

그래도 거긴 좀 나을려나.

미국 플로리다 간 김에 시카고도 들려 오라는 어이없는 말처럼

이왕 온 김에 강진을 들른다는 것도 그것과 한가지다.

같은 전남 땅이라도 광양과 강진은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엄청 멀다.

이미 해는 서쪽으로 이만큼 이울어 하룻밤을 자야 했다.

 

간밤부터 비가 내려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온통 흠뻑 젖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

여러 날을 태우고 있는 동해안 산불도 이젠 진화가 될 것이었다.

다상초당으로 올라갔다.

동백숲은 여전한데 여기도 꽃은 없다. 옥룡사지 동백림에 드문드문 달려 있던 두어 송이 꽃마저도 여긴 없다.

사람들은 오솔길을 자꾸 올라가는데 역시나 너도나도 실망하는 대화들.

 

 

보통의 여정이라면 다산초당을 거체 백련사로, 혹은 그 반대로 넘어가는 게 보편적인데 오늘은 없다. 다산초당까지 와서는 실망하고 그냥 내쳐 돌아가곤 한다.

그래도 나는 여기까지 왔으니 백련사로 넘어간다.

비는 흠신 내리고 숲은 부옇게 안개에 싸여 있다. 이 초록의 세계가 좋다.

그리고 빗소리. 머릿속이 가뿐하다. 숲은 인간의 궁극의 종착지다.

 

이 길과 백련사도 여러번 다녀갔건만 하나도 기억에 없고 처음인 것 같다.

백련사 대웅전에서 저만치 보이는 강진만 바다를 보니 그건 기억난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흐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동백숲이다.

 
 

 

이 거대한 동백숲에 어찌 꽃은 한 송이 안 보이는가.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겠다만 동백나무도 해거리를 하는 건지.

 

 

 

다산초당 마루에 앉아 비맞는 나무를 쳐다본다.

나무, 숲, 비, 안개, 적요, 그리고 고독. 

오카리나 불기 딱 좋은 상태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숲과 비와 나뿐이다.

 

 

 

 

 

 

                 정미조 :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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