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은 그랬다.
와인처럼 달콤한 했었다. 아니다
와인처럼 쌉쌀했었다.
울긋불긋 가을 숲에 새카만 머루가 지천으로 익어 가고 있었다. 나의 숲에 들어온 그녀는 숲의 요정이었다. 내게는 그랬다. 하루 종일 숲을 헤집고 다니며 온갖 세상 시름을 다 잊은 듯했다. 일주일 내내 고역을 버티고서는 주말엔 내게 왔다. 가을 숲은 우리들 차지였고 아니 우리는 가을이었고 우리는 또한 숲이었다.
입속과 창자가 새빨개지도록 우리는 까만 머루를 따 먹었다. 먹다 지쳐 밑동 굵은 상수리나무에 기대 졸기도 했다. 입안에 담뿍 머루알을 머금은 그녀가 내 얼굴을 톺으며 마구 입술을 찍어대는 장난을 쳤다. 와인 같은 붉은 즙이 내 얼굴을 물들였다. 그 장난의 키스가 그때까지 경험했던 어느 깊은 입맞춤보다도 황홀하고 달콤했었다.
먹다 먹다 우리는 수퍼에서 플라스틱 통을 사다가 머루주를 담갔다. 그것이 숙성되면 같이 나누어 마실 날을 기약하며 아름다웠던 가을 한 철을 보냈다.
그러나 그해가 가기 전에 우리는 이별했다. 남녀의 사랑이란 게 늘 그렇다. 우리는 영원을 바라지만 결코 영원하지 못한 게 사랑이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연애를 하고 사랑에 빠지며 또 종국에는 가슴 안에 상처를 얹고 마는 것이다.
능금이 익어갈 무렵 가을에 올 사랑을 꿈꾸었지만 능금이 익기도 전에 사랑이 끝났다는 노래처럼 그것은 참으로 허무한 것이다.
그해의 머루주는 기약했던 사람이 없이 홀로 숙성하며 겨울을 넘겼고 못다한 사랑을 시위라도 하듯 하얀 겨울 안에서 유난히 빨갛게 우러났다. 그 처연함이라니.
겨울이 끝나기 전에 내게는 다른 여인이 찾아 왔다. 한번 간 사랑은 이별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된 것이다. 늘 그렇듯이 사랑은 또다시 찾아오지. 암 그렇고 말고. 그 처연하리만큼 붉은 머루주는 온전히 그녀 차지였다. 아마도 그녀의 이미 끝난 사랑이 몹시도 애달프고 서러워 그 한풀이라도 하는 듯 경건하고 성스럽게 마셔댔고 산골짜기에 진달래가 꽃망울을 머금을 때쯤 그 성스러운 의식이 끝났다. 내 생각인데 그녀는 지난 가을에 이별하고 간 여자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건 아닐까 한다.
올해도 머루가 오달지게 열렸다. 아무 의미 없이 습관처럼 또 술을 부어 놓는다. 내 붉은 와인을 마실 그 누구 찾아올까.
쿠르티스 : 나를 잊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