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남미륵사
혹시 남미륵사라는 사찰을 아세요?
그 이름이라도 들어 보셨습니까.
이번에 어쩌다 그 이름을 접하고는 다른 덴 몰라도 여긴 꼭, 하고 행장을 차려 머나먼 남쪽 강진으로 떠났습니다.
여기가 그야말로 꽃대궐로 명성이 자자하더군요.
조계종도 아니고 천태종도 아니고 ‘세계불교미륵대종’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종파의 한국 총본산이라고 합니다.
전각 불상 등 건축물이나 각종 조형물들도 그간 우리가 봐 왔던 것과 많이 다른 독특한 도량입니다.
나쁘게 표현하면 사이비 요소가 강한 이질적이고 기괴한 모습들입니다.
그러므로 충분한 볼거리가 되기도 합니다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의 꽃을 보러 옵니다.
과연 명성대로 대단한 비주얼입니다.
내가 다녀본 여행지 중 첫손가락이라고 친구에게 문자도 보냈습니다만
어디 한 군데도 빈틈없이 꽃으로만 채워진 광경이라니요.
여기 꽃은 철쭉과 서부해당화 두 가지입니다.
간간이 이름만 듣고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서부해당화가 여긴 온 도량을 뒤덮었습니다.
서부해당화는 절정으로 만개했고 철쭉은 아직은 덜 피었지만 그 아우라는 최고였습니다.
그 일주일 후는 꽃도 사람도 절정이었을 겁니다.
건물과 건물로 이어진 산책로는 죄다 꽃터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도 인파가 워낙 많아 얼굴 초상권을 지키기는 어려웠습니다.
사람이 드물어 한적할 때 가면 좋겠지만 당연 그때는 꽃도 없을 테니 의미가 없습니다. 인적이 드물면 기괴한 분위기 때문에 조금 무섭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상과 감상은 강렬하지만 다 적을 수는 없고 이런 곳이 있다는 소개로 대신합니다.
내년 봄엔 한번 꼭들 가 보시라고 강력히 추천합니다.
생전 처음 본 서부해당화.
여기서는 도량 전체를 뒤덮은 가장 흔한 꽃.
사천왕상도 우리가 보던 그것들과 많이 이질적입니다.
남미륵사의 봄
바람이 아직 서늘한데 남미륵사 뜰엔
작은 꽃잎들이 조용히 피었습니다.
종소리도 들리지 않고
발자국도 멈춘 그 자리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불상 앞에 앉으니
마음이 먼저 무릎을 꿇고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피어나더이다.
어릴 적 어머니 손잡고
이곳을 찾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땐 봄꽃만 보았지요.
이제야,
그 꽃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입니다.
부처님, 이 봄도 인연이겠지요.
지나가고 또 오겠지만
이 순간의 향기, 이 마음의 고요는
잊지 않겠습니다.
남미륵사의 봄이 내 안에도 피어나기를
조용히 기도합니다.
너무나 외로운 날엔
철쭉꽃 흐드러진 동산에 섭니다
홀로 가야 하는 길
누가 있어 벗이 될까요?
모두가 떠나간 자리 기대고 싶어도
기댈 곳이 없는 날
동산에 서면 나를 부르는
잎이 열리는 소리 잎이 닫히는 소리
그대 향한 그리움마저
석양의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리면
기댈 곳이 없는 난, 어쩔 수 없이
한 그루 철쭉이 되고 맙니다.
법흥 <나는 기댈 곳이 없다>
남미륵사를 나오면 너른 들판에 유채 노란 꽃이 질펀합니다.
서러움
견딜 수 없는 날엔
출가(出家)를 결심하던 그날처럼
나를 부르는 화방산,
산마루에 선다
그리움은
그리운 데로 날려 보내고
외로움은 외로운 데로 떠나보내고
마지막 남은
그대 향한 미련은
망각의 시간 속으로 흘려보내고
산마루에 서면
또다시
솟아나는 그리움
외로움
그대 마음도
퍽, 아팠으리라
내 사랑
아픈 뒤에야 그대를 본다
그대 외로움을 본다
법흥 <사랑은 아프다>
Down By The Salley Gard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