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숲 2025. 3. 23. 20:10

전철에서.

 

빈자리는 없고 서 있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가방을 벗어 선반에 얹는데 바로 앞에 앉았던 아가씨가 일어나며 앉으시라고 한다. 내게 건넨 말인 줄 몰랐는데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 어? 나? 움찔했다.

 

당황스러워 괜찮다고 앉으라고 어깨를 누르며 주저앉혔더니 다시 일어나며 앉으시라고 한다.

 

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이제껏 자리를 양보만 하고 살아왔는데 양보를 받는 이 상황은!

 

거듭 양보하며 일어난 그녀의 친절을 또 거절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앉긴 했지만 솔직히 고맙지는 않았다.

불편한 기분으로 앉아서는 오만가지 상념들이 들고 나갔다.

 

충격이다.

이제껏 자리양보를 하고만 살아 왔는데

아 이제 나도 양보받는 할아버지로 보인단 말인가.

모자도 썼고 청바지도 입었고, 외모상으론 그럴 리가 없는데.

더구나 그날 있었던 모임에서도 ‘점점 어려지는 것 같다'는 립서비스를 받았던 터였다. 액면 그대로 받을 수만은 없는 농담이지만 그래도.

 

난생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현타가 와서 많이 언짢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