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강릉 안반데기 운유길

설리숲 2019. 6. 24. 23:41


 

귀때기가 떨어져 나가게 추워야 할 겨울의 한복판인데, 더군다나 쉴 새 없이 세차게 바람 부는 고원이거늘 겨울답지 않은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더기는 고원의 순우리말이다. 개마고원은 개마더기라 하면 좋다. 안반은 예전 방식의 떡치는 판이다. 평창과 강릉에 걸쳐 있는 이 고원이 떡치는 안반을 닮았다고 해서 안반데기라 한다.

길이 주요 테마로 인식되는 세태에 맞춰 이곳을 운유길, 즉 구름이 노닌다(雲遊)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 모든 게 그렇지만 이름 하나로 그것이 정의되지는 않는다. 요즘은 깊이 있는 사고 없이 그럴 듯한 수준에서 스스로 만족하니까..

 

나무는 없고 황량한 버덩이다. 여름 한 철은 고랭지배추로 가득 차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지만 그것도 기껏해야 석 달 남짓의 풍요다. 이런 지형으론 태백의 매봉산, 귀네미마을 등이 있다.

보기엔 멋지지만 나무가 없으니 폭우 등의 재해에 취약점이 있다.

안반데기에는 거주민이 없다. 배추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기거하거나 인근의 집에서 들락거린다.

 

겨울날의 오후는 노루꼬리만큼이나 짧다. 그간의 입소문이 있어 이 황량한 더기에도 관광객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시나브로 이동해 가던 태양이 어느 새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더기에 고요한 어둠이 내린다.

 

흰 자작나무와 잔설이 을씨년스럽게 고적해 보인다. 춥지 않은 겨울이어도 어서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겨울은 너무 길어.
























 



Kate Nord-Walking In The 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