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해방촌
이름 그대로 해방이 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룬 마을이라고 한다.
왜 다른 데도 많은데 오르기 힘든 달동네로 왔을까. 아마 미군기지가 있으니 그에 따른 생의를 좇아 마을이 늘어났을 것이다.
여전히 이곳은 달동네다. 좁고 굴곡진 골목들과 담장. 가쁘게 숨을 내쉬는 가파른 오르막길들. ‘해방촌’이라는 이름부터 낡고 오래된 이미지를 풍긴다. 문명화에 찌든 도시인들에겐 어쩌면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시티로서의 로망일 수도 있다. 단지 호기심의 발로일 테지만.
명물이던 108계단은 지금 공사중이다. 가운데 공간에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고 한다. 작년 가을에 착공해서 오는 11월 19일에 준공한다고 하는데 진행상태를 봐서는 1주일도 채 안 남았는데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이 계단은 일제가 신사를 지어 놓고 참배를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식민의 유산이지만 어쨌든 주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서린 명물이 세월을 따라 존재의 가치와 의미가 변해가고 있다.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누가 이 층계에서 밤새도록 울었다.
그리고 아이처럼 잠들었다.
어느 계단에 붙여 놓은 이 글을 보면서 문득 ‘상아의 노래’가 생각났다.
여태까지는 상아를 여자 이름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다른 뜻으로 상아(孀娥), 즉 젊고 예쁜 과부의 뜻도 있음을 근래 상기했다. 그러고 나서 노래 가사가 비로소 그럴듯해진 것이다. 공연히 슬픈 감정이 스멀거린다. 찬이슬 내리는 늦가을 이슥한 밤. 누추한 골목 담벼락에 기대 앉아서 절망의 울음을 삼켰을 그 여인. 굳이 해방촌 낡은 계단에 이 문구를 써서 붙인 사람의 애잔한 심정에도 동정이 간다.
해방촌에 놀러가자고 한다면 이곳이 아니라 새로 형성된 신흥로일 것이다.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와 퓨전음식점들이 하나의 문화카르텔처럼 형성된 곳이다. 구 골목에서 한 발짝만 나오면 전혀 다른 문화가 서 있는 묘한 동네다.
주민들의 애환은 남의 일이고 여행자에게는 이런 낯선 동네가 그저 신기하고 재미 있는 구경거리인 것이다.
송창식 : 상아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