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소백산 비로사

설리숲 2018. 3. 12. 00:12



 


 누구인진 기억에 없지만 소백산 아래 터 잡고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말에 나도 막연히 수긍했던 기억이 있다.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 중 하나인 곳이라는 도참설은 무시하고 산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이랄까 기운들이 사람을 묘하게 이끌어 아늑하게 해 준다.








 올겨울(달력상 그리고 계절상으로는 봄이지만)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비로사.

 실은 도보여행의 사전답사로 떠난 길이었다. 죽령옛길과 곰너미길, 그리고 달밭골을 잇는 여정이었다. 예전 <오지마을을 찾아서>란 여행기를 읽고 방랑벽이 도졌었다. 중고 사륜구동차를 구입하고 책자에 소개된 오지마을을 탐험했었다. 돌아보면 내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때 소백산 자락의 달밭골을 찾아 들었었고 그 기억이 되살아나 도보여행지로 정하면 어떨까 하여 나선 길이었다. 비로사는 알지도 못했고 따라서 예정에도 없었지만 달밭골 입구에 있어 지나칠 수 없었다. 내 과문의 탓으로 몰랐던 것이지 들러 보니 천년고찰로서 소백산 일대에서도 전통이 있는 절이었다.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과 이름이 같다는 것에서도 그 위상을 짐작한다.













  풍광은 여전히 깊은 겨울이다. 산 아랫마을은 이미 완연한 봄이어서 낮으론 잔등에 땀이 나게 덥지만 산으로 오를수록 덮인 눈이 두텁다.

  이런 풍광이 좋다. 혹한의 겨울은 추워서 감히 겨울을 느낄 여유가 없다. 풍경은 겨울이지만 기온은 훈훈해 너그럽고 여유롭게 겨울풍경을 즐길 수 있는 꼭 이맘때의 계절이 좋다.






 

 복수초다. 그 이름도 듣고 사진으로도 수없이 봐 온 이 식물을 난생 처음 보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여행이 큰 의미가 되었다.










 비로사 경내에서 마주 건너다보이는 산자락이 달밭골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예전의 느낌은 없다. 그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로서의 달밭골이었다. 그 느낌의 마을이름으로 내 소설에도 등장시켰었다. 지금도 외진 곳이긴 하지만 예전의 민가는 하나도 없고 주민들은 펜션이나 민박으로 전업한 상황이다. 내가 그때 걸었던 기스락이 어디쯤이었는지 도시 가늠이 되지 않는다. 벌써 20여 년 전이다.

 그때 여행 중에 음식점에서 밥을 먹으며 빙그레이글스가 사상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TV로 보았었다. 세월의 간격이 어느 새 이렇게 벌어져 있다.





  소백산 산자락을 거니니 문득 예전의 방랑벽이 슬그머니 머리를 든다. , 다시 길을 떠나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1번 : 겨울여행의 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