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숲 2017. 6. 27. 23:36

 

 매년 여름 한번씩 살붙이들이 모이고 있다. 올해는 둘째 누이의 시댁에서 모이기로 했다. 결혼 전부터 자형은 자신의 시골집을 누누히 자랑하곤 했었다. 우리도 예전에 깡촌에서 살았으니 뭐 특별할 리야 없지만 아무튼 언제 한번 자신의 시골집에 가서 놀다 오자고 하더니 드디어 올해 말로만 듣던 그곳 인제 현리로 모였다.

 

 현리 촌엔 자형의 노모가 홀로 계신다. 나는 누나의 결혼식에 안 갔으니 처음으로 뵙는 셈이었다. 90의 연세에 키는 쪼그라들고 허리는 꼬부장했지만 주름도 없는 얼굴이 조쌀하셔서 보기가 좋았다. 청력도 좋으셔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도 다 듣고 참견도 하신다. 우리가 와서 좋다고 환하게 웃으시는데 그 표정으로 보아 정말로 좋으신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공연히 마음이 짠했다. 기껏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은 죄다들 저 살겠다고 나가 버리고 말년에 혼자 지내는 우리들 부모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내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막내아들과 같이 살았으니 그나마 행복한 말년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떠나려고 짐도 챙기랴 청소 등 뒷정리 하느라 왁자지껄하는데 사돈 어르신은 오도마니 마루 벽에 기대앉아 우리들 하는 양만 바라보신다. 우리가 가겠다고 인사를 드리는데 잘들 가하시면서 내내 참고 있었을 눈물을 쏟으신다. !

 어쩌면 좋으냐. 우리가 떠나온 정적을 노인네가 어찌 견디겠는가.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몹쓸 손님들. 나는 금방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얼른 돌아섰는데 이내 주루룩 흐르고 말았다.

 세상의 자식들은 죄다 벌을 받아야 한다. 저들도 자식을 낳아서 자식 귀한 걸 알면서도 부모의 사랑을 전혀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어귀까지 나오면서 보니 형수들도 누나들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 덧없는 인생이여. 작은 누나 부부는 좀 더 있다가 나중에 떠나올 일이지 아들 며느리가 돼서 손님처럼 한꺼번에 쑥 빠져 나올 건 뭐람. 에이 몹쓸!

 우리 중의 누가 하나 죽으면 이 모임도 없어질 테지? 뜬금없는 이런 말이 나왔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뵌 사돈어른과의 비감한 이별이었다.

 

 아직도 애절하게 우리를 쳐다보시는 그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러면서 또 눈물이 마렵다.

 자형이 혼자 계시는 노모를 위해 아담하게 지은 집에 유난히 큰 통유리를 내었다. 거기에 흔들의자가 있었다. 사돈 어르신은 하루 정일 그 의자에 앉아 아무도 오지 않을 마당을 내다보는 것이 생활의 전부일 것이다.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게 고독이라 했던가. 우리도 곧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의 고독을 어찌 감당할까 미리 내다보면 짜장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