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어른
매년 여름 한번씩 살붙이들이 모이고 있다. 올해는 둘째 누이의 시댁에서 모이기로 했다. 결혼 전부터 자형은 자신의 시골집을 누누히 자랑하곤 했었다. 우리도 예전에 깡촌에서 살았으니 뭐 특별할 리야 없지만 아무튼 언제 한번 자신의 시골집에 가서 놀다 오자고 하더니 드디어 올해 말로만 듣던 그곳 인제 현리로 모였다.
현리 촌엔 자형의 노모가 홀로 계신다. 나는 누나의 결혼식에 안 갔으니 처음으로 뵙는 셈이었다. 90의 연세에 키는 쪼그라들고 허리는 꼬부장했지만 주름도 없는 얼굴이 조쌀하셔서 보기가 좋았다. 청력도 좋으셔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도 다 듣고 참견도 하신다. 우리가 와서 좋다고 환하게 웃으시는데 그 표정으로 보아 정말로 좋으신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공연히 마음이 짠했다. 기껏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은 죄다들 저 살겠다고 나가 버리고 말년에 혼자 지내는 우리들 부모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내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막내아들과 같이 살았으니 그나마 행복한 말년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떠나려고 짐도 챙기랴 청소 등 뒷정리 하느라 왁자지껄하는데 사돈 어르신은 오도마니 마루 벽에 기대앉아 우리들 하는 양만 바라보신다. 우리가 가겠다고 인사를 드리는데 “잘들 가” 하시면서 내내 참고 있었을 눈물을 쏟으신다. 아!
어쩌면 좋으냐. 우리가 떠나온 정적을 노인네가 어찌 견디겠는가.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몹쓸 손님들. 나는 금방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얼른 돌아섰는데 이내 주루룩 흐르고 말았다.
세상의 자식들은 죄다 벌을 받아야 한다. 저들도 자식을 낳아서 자식 귀한 걸 알면서도 부모의 사랑을 전혀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어귀까지 나오면서 보니 형수들도 누나들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 덧없는 인생이여. 작은 누나 부부는 좀 더 있다가 나중에 떠나올 일이지 아들 며느리가 돼서 손님처럼 한꺼번에 쑥 빠져 나올 건 뭐람. 에이 몹쓸!
우리 중의 누가 하나 죽으면 이 모임도 없어질 테지? 뜬금없는 이런 말이 나왔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뵌 사돈어른과의 비감한 이별이었다.
아직도 애절하게 우리를 쳐다보시는 그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러면서 또 눈물이 마렵다.
자형이 혼자 계시는 노모를 위해 아담하게 지은 집에 유난히 큰 통유리를 내었다. 거기에 흔들의자가 있었다. 사돈 어르신은 하루 정일 그 의자에 앉아 아무도 오지 않을 마당을 내다보는 것이 생활의 전부일 것이다.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게 고독이라 했던가. 우리도 곧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의 고독을 어찌 감당할까 미리 내다보면 짜장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