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숲 2016. 9. 14. 20:33

 함양에서의 첫 밤,

 벽이 흔들린다.

 

 숙소가 그닥 인상이 좋지 않았다. 날림으로 지은 것 같이 허술하고, 누가 계단이라도 오르내릴라치면 철제 계단이 삑삑 소리도 나고 작은 진동까지도 감지된다.

 

 침대에 엎드려 있는데 벽이 요란하게 흔들린다. 대형 화물차가 지나가는 때였다. 혀를 끌끌 찼다. 건물이 얼마나 허술하면 트럭 질주에 이렇게 진동이.

 

 얼마 지나서 또다시 똑같이 벽이 흔들린다. 어라, 지진인가 보군. 북한에서 또 한바탕 했나? 그 며칠 전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했을 때 감지된 지진을 겪었기에 이번에 또 대형사건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했다. 라디오를 켜니 북한소행이 아닌 진짜 지진이라는 속보가 이어진다.

 

 글쎄. 먼 나라 일만 구경하듯 하다가 내 땅에서 몸소 겪으니 다들 엔간히 놀랐나 보다. 뉴스에서는 공포니 긴급이니 하면서 주민과 시민들을 인터뷰하고 정말 그들의 놀란 표정도 생생하다. 마치 수도 없이 다른 나라를 피격하고 전쟁을 벌이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911테러를 겪은 황망함을 보는 듯하다.

 

 수도권까지 진동했다니 경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함양도 그 위력은 제법 강했을 것이다. 근데 나는 그리 놀라지도 않고 공포 같은 건 더욱 없었다. 뉴스화면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공포스러웠을까. 혹 과장은 아니었을까. 아님 무감각한 내가 비정상이었을까.

 

 그렇담 그들은 잃을 게 있어서 무서웠을까. 나는 잃을 게 없어서 그럴까. 일견 그렇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가진 것과 못 가진 것의 차이로 자연스레 진보와 보수가 나누어진다는 슬픈 생각을 해 본다.

 

 자연재해라...

 태풍 폭우 폭설 한발 화재...

 이제 우리에게는 지진도 그 범주에 들어왔다. 만일 진앙이 바다였다면 해외뉴스로만 보던 쓰나미의 참상을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떡하겠나. 자연재해를 인간이 막을 수는 없으니. 그저 오늘 하루 잘 살면 그만이지. 신이 진노하지 않게 차카게살자....

 

 

 

 

베르디 : 진노의 날

 

 

진노의 심파의 날이 임하면

다윗과 시빌의 예언 따라

하늘과 땅이 모두 재가 되리라

모든 선과 악을 가리시려

천상에서 심판관이 내려오실 때

인간들의 가슴은 공포로 찢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