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수동적인 폭력

설리숲 2016. 7. 31. 01:19

 

 

 

 

 

 국민학생 때는 이런 집들이 꽤나 있었다. 병조각이나 철조망.

 보통은 동네서 남부럽지 않게 산다고 생각되는 집들이 그랬다. 아무래도 가져갈 게 있으니 주인은 불안하겠지. 어린 소견들은 약간은 선망이 되는 담장이기도 했다.

 

 커 가면서는 간혹 이런 집들을 보게 되면 선망 대신 경멸의 감정이 생기곤 했다. 누구든 허튼 수작하지 마라. 피를 볼 테니. 무시무시한 경고. 저 예리한 조각 날. 불특정 다수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한 폭력성.

 그러면서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되는 부자들에 대한 증오 같은 것.

 

 이즘은 저런 담장들은 거의 사라졌다. 시골 면사무소 등 공공기관들도 담장을 다 헐어 완전 개방화 되어 가고 거의 모든 학교들도 그렇다.

 엊그제 본 이 담장이 그래서 좀 생경스럽다. 아직도 이런 집이 있네. 부잣집도 아니고 그냥 시골 골목길인데, 겉보기와 달리 알부자여서 역시나 빼앗길까 두려운 게 많은 집인가. 병조각 상태를 보니 새로 박은 지 며칠 안 되는 듯.

 

 

 지난봄에 하동 어느 집을 방문했다. 근동에서 가장 근사한 집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고급주택이었다. 고래등같은 기와 집채에 주인의 미적 감각을 돋보이게 하는 세련된 정원 조경. 자리한 집터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전망도 좋았다.

 여주인은 개량한복 차림에 언행이 무척 조신하고 한아한 사람이었다. 차를 마시기 위해 거실로 들어가니 내부 또한 인테리어가 한옥에 어울리게 품격이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이방 저방 기웃대며 고급 인테리어를 구경하였다.

 

 이것저것 차를 마시다가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이 물론 실내에도 있지만 그런 품격 있는 화장실에 내 오줌을 갈기기엔 어쩐지 불편했다.

 밖으로 나와 실외 변소에 볼일을 보고 마당과 뒤꼍 등을 돌아보는데 그때 곳곳에 매달려 나를 감시하는 카메라들을 보았다.

 그제껏 좋았던 그 집과 주인에 대한 인상이 순식간에 바뀌며 정나미가 떨어졌다.

 이 집도 역시 내가 경멸하는 부류의 부르주아지 계층이군.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어. 다 감시해야 해. 나 이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