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똑바로 살아라

설리숲 2016. 3. 22. 00:35

 

 똑바로 살아라.

 

 꽤 오래 전에 SBS에서 방영했던 시트콤이다. 2003년 당시에는 한 번도 이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었다. 작년에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영상이 있어 무심히 한번 보고는 단번 재미가 들렸다.

 그때부터 시간 날 때마다 1회부터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섭렵을 했다. 그간의 모든 시트콤을 능가하는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한다. 작가진들의 기발한 상상력과 뛰어난 필력을 만끽했다.

 

 드디어 어제 마지막 회를 보았다. 일대 반전이 있다. 시리즈 내내 코믹과 재치로 푼수의 진수를 구가하던 인물들이었다.

 마지막 회에서는 죄다 불행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시트콤이니 끝까지 푼수 짓으로 해피엔드하리라는 게 보통의 상식이라면 이 작품은 그 상식을 보기 좋게 깨 버린 셈이다.

 

 솔직히 충격이었는데 그래서 그 여운이 가슴 깊숙이 남는다. 등장인물들이 비로소 인간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웃기고 어설프고 모자라 보이는 그들이었지만 역시 고뇌하고 아픔을 아는 보통의 인간이라는 애잔함. 그것이 작가가 마지막으로 전하려는 영혼의 메시지임을 알겠다. 어쩐지 가슴이 허하게 비어 버린 느낌이다.

 

 처음 시작할 때 낙엽 지는 가을이었다. 겨울을 맞고 봄을 맞고,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이 그렇게 계절을 따라 여름도 넘기고는 다시 가을이 찾아오고 조락의 계절처럼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주 긴 대하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기실 나의 시간도 반년이나 흘렀으니.

 

 출연했던 연기자들의 신상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비운의 고인이 된 사람도 있고, 아가씨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고, 그 작품 이후로 TV에서 자취를 감춘 사람들도 있다.

 

 추억이 되는 언턱거리를 만나면 공연히 가슴이 휑해지고 그럴 때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나왔을 때 난 열여덟 살이었다.

 

스물하나 : 스물한 살의 비망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