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시골 사람들 2
경상남도 어느 촌락에 집을 얻고는 전입신고를 했다. 여부 있나. 마을 주민이고말고.
첫 달이 지났는데 물세를 내라 한다. 1만 2천원이다. 좀 비싸다, 아니 좀이 아니고 많이 비싸다. 여기 오기 전에 도시에 살 때는 수도요금이 5천원을 넘기는 때가 거의 없었는데. 더구나 샤워도 많이 했는데.
이곳은 시골이라 시에서 보내주는 물이 아니고 자체적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탱크에 받아 마을 공동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물은 공짜인 것이다. 물론 완전 공짜로 쓸 수는 없다. 가끔 물탱크 청소도 할 테고 더 가끔은 노후된 부품도 갈아야 하는 관리도 해야 하니 그만한 요금은 내는 것이려니 미리 작정은 했었다. 그런데 1만 2천원이라니 눈이 커진다. 시골집이라 샤워시설도 변변하지 않아 목욕탕에서 때를 씻으니 아파트에 살 때보다도 물은 반도 못 쓰는 턱인데 물값은 그렇다니 시골살이가 더욱 돈이 헤프다는 걸 새삼 느낀다.
두 달 석 달 지내면서 물값 1만 2천원을 꼬박 내다 문득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게 됐다. 마을은 40여 호가 되는데 집집이 1만 2천 원씩 내면 48만원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은 나뿐이고 다른 집들은 다 식구들이 있다. 그렇담 다른 집들은 나보다 더 내야 하니 모르긴 몰라도 물 값이 최소 100만원은 걷히겠다. 아니 그럼 액수가 너무 많지 않나. 청소를 얼마나 자주 하는진 몰라도 그 비용이 100만원이나 하지는 않겠지. 여기까지 헤아리다 보니 심히 부당하다. 100만원이 넘는 돈의 용처는 어떻게 되는가.
그러고 보니 근거도 없이 그냥 구두로 동네 아저씨가 1만 2천원 내라 하고 받아가곤 했다.
혹 이 사람들이 외지인인 나를 배척해 바가지 씌우는 것 같은 의혹이 일었다.
물 값 받아 가는 아저씨한테 물었다. 청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나요? 아이라 그렇기 자주 안허고 석 달이나 넉 달에 한번 정도 하는데... 아저씨는 별 생각 없이 대답한다. 오잉? 그럼 서너 달씩 모은 물 값은? 누구 전문가가 와서 하나요? 아니 그냥 우리끼리 하는데... 오잉? 그럼 서너 달에 한번 하면서 그 많은 돈을 착복한다는 거냐? 이런!
이장을 만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물탱크 청소를 하겠다. 혼자서 할 테니 그 비용을 나를 달라. 그건 상의도 아니고 그냥 통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내가 먹고 쓰는 물 내가 청소하는데 시비할 건더기가 없잖은가.
아저씨 하나 앞세우고 물탱크를 찾아 나선다. 탱크는 모두 네 통이었다. 물을 비우고 들어가 일심으로, 정말 전심전력으로 닦고 닦았다. 특별히 뭐 다른 조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안의 찌꺼기나 물때를 지우는 거라 닦고 또 닦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리 어려울 것도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만족할 만큼 청소를 했지만 나는 또 닦고 닦아 내 예정 시간보다 두 배나 할애했다. 탱크 네 통이면 하루 하고 반나절이면 될 것을 나는 사흘을 닦고 또 닦았다. 앞전의 청소는 언제 했는지 모르게 지저분했다. 과연 청소를 했는지가 의심스러웠다. 그리 더러운 물을 먹고 지냈던가 하니 욕지기가 날 정도였다. 내 사흘간의 부역으로 탱크들이 개운하게 때를 벗고 맑은 물이 담기니 머리까지 가뿐해진다.
며칠 후 이장이 수고했다며 마을회관으로 떡 먹으러 오라 한다. 회관에 고깃근이나 굽고 막걸리 소주에다 떡까지 장만해 조촐한 파티를 벌였다.
이장이 봉투를 내민다. 수고비구나. 받아 열어보니 1만원짜리 10장이다. 뭐시라? 1십만원? 100만원 아니고?
“미안하게 됐심더. 물 값을 한 집에 5천원씩 내게 돼 있어요. 그래서 보통 20만원 정도 걷히는데 청소한 사람 두 사람한테 5만원씩 수고비 주고 나머지는 이렇기 막걸리서껀 떡이랑 해서 간단하게 묵고...
그간 형씨한테는 너무 과하게 받았심더. 미안하게 됐심더. 혼자 청소하시느라고 애를 쓰시는 걸 보고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심더. 이렇기 이실직고하니 너그럽게 넘어가 주이소. 형씨는 혼자시니 이제 2천원씩만 내시소. 그간 1만원씩 과징한 거 정산하고 또 원래는 청소를 두 사람씩 하는데 혼자서 수고하셨으이까 조금 더 얹어 드렸어요.”
에라이 사람들아. 내 그럴줄 알았지. 못 배워처먹은 것들이란 영락없구나. 속으로 열불나지만 또 그렇게야 하진 않는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이실직고를 하는 게 아니라 이제 죄상이 까발려질 처지가 되니 실토하는 짓거리지.
아, 시골 사람들의 외지인에 대한 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정서는 어딜 가도 한가지로구나. 차라리 왕따를 시키거나 하면 그나마 모를까 돈을 울궈내는 건 그건 시골사람의 정서가 아니라 범죄라오 범죄.
나는 시골이 좋다. 그러나 시골사람들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