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숲 2014. 8. 3. 18:51

 

 고등학생 아들놈이 경찰서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끔 싸움질을 해서 얻어터지고 오거나 반대로 때려 피해자 부모에게 빌고 오곤 했지만 경찰서에 연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은 진작 글러 먹었고 사고나 안치면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애비 속 좀 여러 번 썩힐 것 같다.

 이 씨는 경찰서에 가 아들놈을 데려올까 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죄가 있고 없는 건 판사의 소관이지 자신이 관여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자신의 기분을 잡치게 한 원가 놈을 찾아가 담판을 짓는 일이 더 중했다.

 

  자동차를 몰아 30분 남짓한 거리를 달려가 원가의 집앞에 다다른 이 씨는 마뜩찮은 눈초리로 그 집의 담장을 힐끗 훑었다. 싸가지 없게스리! 잔뜩 벼르고 온 이상 단단히 혼을 내주리라 도슬렀다.

 이 씨에게는 큰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다. 집 담장에 그림과 문양을 그려 넣어 그게 아주 근사한 작품이어서 이웃사람들이나 간혹 지나가는 외지인들에게도 멋지다고 칭찬을 듣곤 했다. 돈 좀 들여 제법 재주 있는 사람을 불러다 그린 그림이었는데 돈 좀 쓰길 잘했다고 스스로 만족하던 그였다.

 그런데 어느 동네에 자신과 비슷하게 담장을 치장한 집이 있는데 그 집 역시 사람들에게 멋진 담이라는 칭찬이 자자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른 그 집을 찾아가 보니 과연 그렇고 괘씸하게도 자신의 담과 흡사하게 그려 놓았다. 이 사람 어디 두고 보자,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가라는 주인 남자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한 거니 당신 당장 저 그림들을 지우라고 호기 있게 윽박질렀는데 원가는 전혀 수굿하지 않았다. 그게 당신만 가지고 있으라는 법이라도 있느냐, 다른 어딜 가도 저런 그림들은 흔해 빠진 건데 당신이 뭔데 나더러 지우라마라 하는 거냐, 오히려 더 크게 이 씨를 닦아세웠다. 의외의 거센 반격에 이 씨는 그만 더는 몰아세울 기가 꺾여 분하지만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앙심은 더 커졌고 자기도 모르게 알 수없는 승부욕이 생겨났다.

 이 씨는 원가의 대문 앞에 철퍼덕 앉았다. 게서 원가놈이 항복을 할 때까지 농성을 할 요량이었다. 수퍼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도 사다 놓았다.

 그렇게 버티고 앉았다. 저녁이 되고 어스름이 내렸다. 어두워지자 축축이 이슬도 내렸다. 그래도 원가놈이 항복할 때가지는 버티고 앉을 심산이었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찰서에 가서 애 좀 데려오라고. 그러나 이 씨는 그까짓 게 뭔 대수냐고 아내에게 찜부럭을 냈다. 죄가 있으면 판사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내 그림을 따라한 원가놈이 저걸 지우게 하는 게 지금 더 중요하단 말이다.

 

 이 씨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밤이 깊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이창희 진주시장이 서울에 상경해 일인시위를 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내용인즉슨 서울시가 해마다 하고 있는 유등축제는 진주시가 오래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온 전통 있는 행사인데 남의 축제를 서울이 뺏어갔다며 당장 그만두라는 항의였다.

 진주 입장에서 보면 나름의 명분도 있고 축제에 부여한 의미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등축제는 진주가 만들어낸 고유의 축제는 아니다. 중국 일본 등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행해 오던 축제다. 봄철이면 전국 곳곳에서 벚꽃축제가 있다. 어느 누가 지적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리고 유등축제가 그리 오래된 행사도 아니다. 개천예술제가 제법 역사가 있는데 유등행사는 이 축제의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근래에 시작된 것이다. 내가 1999년부터 3년간 진주에 살았었는데 그때도 유등축제는 없었다. 그렇다면 길게 봐야 10년이나 아님 좀 더 됐을 것이다. 진주시가 그들의 전통문화라고 주장할 명분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그보다 당시 진주에서는 더 심각한 사안이 진행되고 있었다. 진주의료원이 폐업 수순을 밟고 있었다. 시민들의 반대와 항의를 무릅쓰고 경남도는 적자라는 이유로 강제로 폐업을 결정했다. 그때 이창희 진주시장은 팔짱을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진주시장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거였다. 도에서 결정을 하고 그렇게 진행되는 일에 시장이 나설 일은 아니라는 거였다. 이것이 시장의 마인드였다.

 선거 때는 진주시민들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고 굽신거렸을 것이다. 내가 수장으로 있는 도시의 주민들의 건강과 보건에 관한 절실한 사안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시장으로서의 자격과 임무를 상실한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동원하여 막아내려는 노력은 했어야 했다.

 왜 도청 앞에서 일인시위는 하지 않았는가.

 

 정작 필요한 일은 제쳐두고 그 시각에 시장이 한 일은 상경하여 일인시위를 한 것이다. 유등축제 내놓으라고.

 

 진주의료원은 결국 폐업되었고 이 시장은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 번 당선되었다. 뽑히는 사람이나 뽑아주는 사람이나... 더 이상 할 말 없다. 끝

 

 

 

               2012년에 가 본 진주 유등축제.

같은 테마의 축제라도 지역 상황에 맞는 강점을 부각시켜 좀 더 이상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