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묵언
설리숲
2012. 4. 1. 18:47
지리산 능선으로 햇살이 뽀얗게 부채처럼 펴지며 아침이 깨어나고 있다.
천연요새 교룡산성 자락에 선국사.
이곳은 임진란 때 승병들의 주둔지였다 한다.
영화로웠다는 옛 이야기만 간직한 채 지금은 퇴락하고 쓸쓸해 오히려 수행하기에 이상적인 고즈넉한 사찰로 남았다.
조촐하고 수더분한 건물들이 좋다. 화려하지 않아 좋다.
법당 앞 칠층석탑으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나무가 휘휘 늘어져 배배 꼬여 있고 구새 먹은 감나무 한 그루와 기단 아래에 화살나무가 하나 앙상한 뼈대로 겨울을 버티고 있다. 아름다운 절간 풍경이다.
이른 아침이건만 고드름이 발처럼 주절주절 매달리고 덕밀암지로 오르는 오솔길엔 눈 속에서 인동초가 파랗다.
시누대 초록 댓잎을 쪼고 있는 밀화부리 한 마리.
결혼이라고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하지 말아야 될 결혼은 추하다.
나는 무언의 시위를 한다.
그곳을 떠날 때가 됐다.
시방은 겨울의 한가운데.